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이 작품은 부르주아와 귀족들이 공존하던 19세기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는 데카당스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귀족들 사이에 향락과 사치가 그 퇴폐적 분위기를 한층 더 해주던 시기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서민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지독하고 비참한 가난도 함께했습니다. 발자크는 이 작품 안에 프랑스 파리의 퇴폐, 빈부격차, 찬란함 속에 감춰진 허위와 가식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허위와 위선이 판치는 프랑스 파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주제 중 하나는 가난과 사치의 대비입니다. 작품에서 이 둘은 단순히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부와 가난을 한 인생에서 동시에 맛본 고리오, 가난한 처지이지만 사교계에선 주목받고 있었던 으젠, 사치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기저엔 빚더미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고리오의 두 딸들, 이렇게 부와 가난은 모순처럼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사치의 뒤엔 가난이 스며들어 있었고, 가난은 사치의 껍데기를 끊임없이 탐닉했습니다. 또한 고리오와 두 딸의 관계에서 사랑의 대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조건부 사랑이 이들 사이에서 대조를 이룬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던 고리오의 조건 없는 부성애는 역설적이게도 두 딸들에게 조건부 사랑을 심어주었습니다. 고리오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부를 두 딸에게 아낌없이 주었으나, 두 딸들은 아버지의 부를 조건으로 하여 아버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고리오의 넘쳐흐르는 파도와 같은 사랑은, 두 딸의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샘솟을 샘물마저 휩쓸어버렸습니다. 고리오의 사랑은 돈을 매개로 두 딸에게 전달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천문학적인 돈의 규모에서 나오는 위압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본질을 가리고 두 딸의 마음속을 그 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채워버린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굉장히 높은 빈도를 가지고 출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화폐 단위인 '프랑'입니다. 이 단어는 이야기 내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소설 내 모든 행위 뒤에는 프랑을 단위로 한 돈 계산이 줄곧 따라다닙니다. 인물들의 대부분의 행위들이 돈을 목적으로 행해지며, 많은 생각들이 돈 계산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보케르 부인에게 고리오의 죽음은 몇십 프랑의 비용 지출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사교계는 자신의 능력과 돈을 과시하기 위하여 돈을 온몸에 펴 바르는 돈의 진창이었습니다. 귀족 사교계에서의 부부관계는 지참금 거래를 위한 형식적인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부인과 젊은 귀족 청년들 간의 정부 관계는 부끄러움의 대상이기는커녕 그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처럼 용인되다시피 했습니다.
남편들은 결혼지참금을 챙긴 후 부인의 외도에 대하여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며, 부인들에게 남편이란 귀족부인의 칭호를 선사해주고 자신의 사치와 향락, 정부와의 교류를 지원해줄 물주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상대에 대한 애정표현에 적극적이었는데, 이 조차도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 온몸에 향수를 뒤집어쓰는 것과 같은 가식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으젠이 발견한 단 하나의 진심은 고리오의 부성애였습니다. 으젠 또한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출세욕에 불타고 있었으나, 고리오의 헌신적인 부성애를 보고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으젠은 사교계를 배워감에 따라 화려함과 찬란함 뒤에 감춰진 악취와 진창을 알게 되면서 경악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쌓일 때마다 그도 결국 이 분위기에 취해 적응되어갑니다.
사회의 분위기는 개인을 천천히 집어삼키는데, 그 어떤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도 집단적 분위기가 지니는 흡인력으로 인해 끝내 그 분위기에 걸맞은 구성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회적 악습에 침식당한 개인은 '나라고 별 수 있겠냐'라는 식의 합리화로 자신의 정신에 끊임없이 마약을 주사합니다. 고리오의 어리석지만 헌신적인 부성애, 그리고 으젠의 젊은이 특유의 순수한 양심은 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이 분위기 속에 흠뻑 취한 자들은 인간의 진심과 순수에 대하여 유치한 미숙 아적 면모라고 낙인찍으면서, 악취가 진동하는 자신들의 행위는 관록이 엿보이는 어른다운 행동이라며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기만하는 법입니다. 타인의 악취에 대해선 경멸에 치를 떨면서도 자신의 악취에는 한없이 관대한 이러한 인간상은 탈옥수 보트랭의 세상을 향한 조롱에서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 당신들 중에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나의 이 얘기에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데카당스와 허위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의 칼날은 비단 당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허위의식, 탐욕으로 인해 뒤틀려버린 양심, 누군가를 짓밟아야 비로소 느껴지는 기만적인 명예를 향한 갈망들을 관조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고리오 영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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